여름동안에 완전 온라인 세상과 담쌓고 살다가 간만에 여기 로그인하는데 하도 오래 로그인하지 않아서
휴면 계정이 되어 있었다. 비밀번호를 변경하고야 다시 이 곳에 들어올수 있었다.
지난 글들을 읽어보니 너무나도 찌질해서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싶어졌으나 유혹을 이겨냈다.
난 앞으로도 계속 찌질할거라서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도 똑같을거야...
최근에 같이 책을 읽는 모임이 있는데 야심차게 모임을 시작했지만 지난 일년을 돌아보니 책읽기 모임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의 모임만 있었을 뿐이다. (주로 만나서 먹었던것 같다.)
해서 올해가 다 가기 전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열심히 끌고 왔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또다시 불발됐다.
이렇게 되니까 독서라는 게 뭐... 꼭 누군가 같이 읽어야만 하는 건가? 늘 그랬던대로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다
끝날수도 있지 뭐.. 근데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읽은거 흥분해서 얘기하면 같이 호응해주고 뭔소린지 알아주고
그래야 재밌지. 보면 미용실 가는거랑 비슷해서 퓔 받았을때 쏟아내고 말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가 있는건데
아무래도 혼자서 흥분하고 답답해하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게 좀.. 서글프기도 하잖아?
그러고보면 나라는 인간은 참으로 누군가가 함께 해줘야 하는 인간인가보다.
그러나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여기에라도 독서 후기를 남겨놔야겠다.
무려 13년전에 읽었던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이번 독서모임의 공통 책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은 (너무나 좋아하는 책인것이 무색하게도) 관리소홀로 인해 곰팡이도 피고 막 그랬다.
알라딘 중고매장에 갔다가 최근에 나왔고 너무나도 새 책에 가깝기도 한 책을 한 권 더 구입해서 읽었다.
다시 읽은 도련님..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도 딱 들어맞아 너무나도 재미있고 통쾌했다.
나츠메 소세키는 1876년에 태어나 1916년에 사망한 일본의 대표 문학가이다. 그는 문학가이기도 했지만 일본
최초의 국비 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에 다녀오기도 한 영문학자이며 교수였다. 2년간의 영국 유학 후 지금의
도쿄대인 도쿄제국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다. 이 소설 '도련님'은 그가 유학길에 오르기 전
시코쿠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가 배경이 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이번 모임을 준비하면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도련님의 시대'라는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 만화에 따르면 나츠메 소세키는 평소 주사가 심했고
신경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면서 병증을 가라앉혀보고자 했고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느꼈는지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유명해지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도련님'은 그의 두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두 세계가 등장한다. 하나는 기요 할멈으로 대표되는 구시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돈나로 대표되는 신시대이다. 중학교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기요 할멈을 생각하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면 작품 속의 도련님은 계산에 의해 정혼자를 버리고 빨간 셔츠를 선택하는 신여성 마돈나보다
(소설 속에서 이 내용이 매우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고가 선생님이 먼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대략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몰락한 가문의 할멈이라고 해도 기요 할멈의 세계를 더 크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결국 도련님은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기요 할멈이 기다리고 있는 도쿄로 돌아오게 되는 모습을 보며
기요 할멈의 세계가 곧 도련님이 지향하는 세계임을 알 수 있었다.
나츠메 소세키는 일본인으로서 서구를 배워야 하고 영문학을 한다는 것에 괴로움을 느꼈다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 그 괴로움과 죄책감이 신경쇠약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그가 쬐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미 서양문화에 거의 완전히 오픈된 시대에 태어나 그것을 당연히 보고 자랐지만 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안 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 벌을 피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장난 같은 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p56
겉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마음속까지 끌리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논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이다.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