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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여행을 앞둔 내 결심

1. 오늘 아침.

 

일어나서 빨래하고 빨래널고 밥해서 두 남자들 입 속에 먹을 거 조금씩 넣어주고 출근시키고 등원시키고 난 후

 

성탄절 선물을 미리 사놓으러 동대문 문구거리로 나가는 전철 안.

 

자리에 앉아 책을 펴놓고 읽는데 맞은 편에서 행색이 남루한 한 사람이 서성이다가 자리에 앉더니

 

옆자리 여자에게 뭔가 보여주면서 자꾸 말을 건다. 결국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내 쪽에 와서 나보다 먼저 내 옆에 있는 또 다른 여자에게 뭔가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소리도 들린다. 장애인입니다. 좀 도와주세요 라고.

 

죄송하다며 거절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이번에는 내 차례. 내가 읽고 있는 책 위에 공격적으로 무슨 카드를 들이대며

 

장애인이니까 도와달라고. 순간 지갑에서 천원이라도 꺼내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쩐지 무척이나 불쾌했기

 

떄문에 나는 대꾸도 안하고 그냥 앉아있었다. 이러다가 내 머리통 한대 치면 신고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다시 내 옆자리 여자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 여자도 역시 자리를

 

옮겼고 그 남자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큰소리를 내며 내렸다.

 

그 사람은 정말 장애인이었을수도 있다. 사지는 멀쩡했으나 눈빛은 평범하지 않았고.. 뭐 정신장애인이나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 사회는 그런 사람을 잘 받아주지 않으니 거부로 인해 쌓인 분노나 상처도 많을 것이고..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까 지갑을 꺼내지 않았던 내 행동에 약간 후회는 되었지만 내 불쾌감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깨닫고

 

나니까 그런 후회도 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젊은 여자에게만 다가가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던 거였다.

 

그 시간 전철에는 만원인파는 아니었어도 그냥 적당히 사람이 있는 정도였는데 그 사람이 다가왔었던 세명은 다 내 또래

 

젊은 여자들이었다. 그 옆으로는 건장한 남자들도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근처는 가지도 않았음. 남자와 함께 있는 여자

 

근처에도 마찬가지로 가지 않음. 이런 생각이 드니까 급 빡치면서 혼자 속으로 아오...

 

 

2. 오늘 오후

 

아이 하원시키고 합기도 보내기 전 잠시 간식 타임. 목욜은 아이가 합기도 가 있는 시간에 나도 레슨이 한 타임 있다.

 

그래서 간식을 먹여서 합기도 데려다주고 레슨을 하러 가게 되는데 출발하려는 참에 갑자기 전화.

 

혼자서 김장을 하신 시어머니가 김치를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신거였다. 김장 도와드리지도 않는데 김치를 주시니

 

죄송하고도 감사한 일이지마는 나는 레슨을 가야함.. 그런데 오늘이 아니면 낼 아침에 가져가라 하심.

 

내일은 우리 가족끼리 1박 2일(또는 그 이상) 안동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터라 그날도 안되고..

 

그럼 어쩔수없이 레슨을 하고 김치를 가지러 가겠다고 하면서 김치양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봤다. 김치통을 가져가야 하니까.

 

그랬더니 김장을 하는 시기인데 그동안 김치통 정리 안해놓고 뭐했냐며 잔소리소리를.................나 십분안에 김치통 가지고

 

애는 합기도 데려다주고 레슨하러 가야되는데!!! 여기서 또 슬슬 그 분이 올라오심이 느껴지고.. 상대가 상대인지라 거기서 그냥

 

귀와 마음을 닫으려고 애를 쓰기는 했는데 진짜 하아...... 김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집에서 자라서 김치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나.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게 아니지. 자고로 김치란 중요한것이여. 머 난 그런거 존중한다. 그 세대가 살아온

 

삶이 그랬으니까. 시대가 변했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맞춰드린다. 근데 난 김치 5분 대기조가 아니란 말이다.

 

오늘 김치를 담그는 줄도 몰랐는데 당장이라도 김치를 가지고 올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김치통이 열개는 있지 않냐며? 작년에 김장하고 김치냉장고에 있는 김치통이 8개. 남편은 일주일에 하루 내지 이틀만 집에서

 

밥먹고 나는 김치를 잘 안먹고 애는 아직 김치를 잘 못먹는 나이. 그 김치가 소비되어봤자 몇 통이나 소비 될수 있을까.

 

근데 뭘 이렇게 김치통에 넣어놨냐고. 아니.. 어머님이 작년에 김치를 그렇게 많이 주셨잖아여... 시댁 김치 냉장고가 꽉 차서

 

거기 있는 것까지 죄 우리집 김치냉장고에 들어있잖아여..... 뭘 넣어놨냐나요.. 김치죠, 김치. 하아...

 

결국 애는 합기도 못가고(데려다줄 시간이 없어서) 레슨갈 때 데려갔다가 김치 가지러 가는데 비는 왜 또 와가지고, 하필

 

시간은 왜 또 퇴근시간이어가지고 막히기는 겁나 막히고. 혼자서 정신이 오르락 내리락 했더니 넘 피곤하고 지쳐서

 

저녁식사도 마다하고 김치만 실어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 내가 빡친 두 사건은 원인과 대상이 분명하다. 뭣때문에, 누구때문에 열이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걸 해소할 방법이 없다. 남자 근처는 가지도 못하면서 자기보다 약할 것 같은 젊은 여자한테만 동정을 강요하는 사람

 

이나 내 상황과 사정보다 그 놈의 김치가 더 중요한 어르신을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며 날 어떻게 이해시키냔 말이지.

 

날 한 대 칠까봐 심장이 오그라들면서 지갑을 열기는 싫고,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며느리도 되기 싫으니까

 

여기서 이렇게 감정을 담아서 주절주절거릴 수 밖에.

 

 

젠장할. 모르겠다.

 

내일 장거리 운전해야해서 자야함에도 울분(?)이 가시지를 않아서 책이나 좀 읽자며 거실에 나왔다가 급 컴퓨터 켰다.

 

신나게 정신적 도피나 해야지. 맛집 검색해서 맛있는 거 계속 사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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